[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논객칼럼=박정애]

코로나로 인해 2020년의 봄은 일그러져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더 멀어지고 고통받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혹시라도 감염될까 싶은 두려움에 봄꽃들의 향연도 만끽하러 떠날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개학 연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정지수 또한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매일 신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바로 마스크 행렬이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선다. 고작 1500원 밖에 하지 않는 물품이지만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1인당 배당된 두 개 밖에는 살 수가 없다. 팔순이 넘은 노년층이 아닌 이상 대리 구매도 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일 주일에 두 번 마스크 행렬에 동참한다. 한 번은 내 것을 사기 위해, 그리고 한 번은 혼자 가기 싫어하는 아들 것을 구매하기 위해서이다.

마스크를 구매하면 일주일 치 양식이라도 배급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제 몫의 마스크를 들고 무척 뿌듯해 하는 아들에게 ‘마스크가 아니라 금스크다’라고 웃으며 말하니 아들이 ‘아니야 엄마, 다이아스크야’라며 되받아친다. 아들의 볼을 살짝 꼬집어준다. 그러다 문득 소액을 지불하긴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처럼 마스크를 배급해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말 없이 동참하고, 엄청난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가게나 학원 문을 닫고 목숨처럼 여기는 예배를 포기하는 적극적인 동참의 모습을 보며 코로나보다 더 큰 재앙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픽사베이

코로나로 일그러진 봄을 보내고 있다면 기후 위기로 우린 설경(雪景)을 잃어버렸다. 극심한 온난화로 인한 기후재앙의 시대가 목전에 닥쳤음을 감지하는 겨울이었다. 그런데 현존하는 기술만으로도 온실가스를 80% 줄여 기후 재앙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지면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이다. 이런 기술들을 적재적소에 적용하려면 세계적 수준에서의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 실천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개별적 실천을 선택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은 부유한 나라에서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뿐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맞서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려면 제2차 세계대전을 돌아보면 된다. 당시 모든 주요 국가들은 가능한 많은 인명을 살상하기 위해 자국 경제 전체를 탈바꿈시켰다. 그 대표적인 국가로 미국을 들 수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공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한 이후 루스벨트는 미국 재계에 요구하는 물품의 목록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비행기, 탱크, 대공포, 폭약 등 전체 물품의 가격은 그 해 미국 총생산 추정치 전체와 맞먹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루스벨트는 결국 요구한 것을 얻었다. 이는 정계의 주요 경쟁 집단들이 모두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인사 수백 명은 미국이 이긴 이후의 후광을 기대하며 1년 내내 일하고도 임금을 1달러만 받는 ‘연봉 1달러’를 자처하며 일했다. 노동조합, 자유주의자,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인들 대부분도 당시의 전쟁을 파시즘에 맞선 저항으로 여겼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민주당 내 진보 세력은 수백 명의 노동자들을 전쟁물자생산국에 들여보내 일하게 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과 코로나 사태가 기후변화와 관련해 시사해 주는 바는, 목적이 합당하고 생활수준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면 사람들은 소비 제한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큰 규모로 일이 진행돼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그런데 기후 재앙이 목전에 도달했음에도 세계의 정치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2차 세계 대전 때와는 달리 그것이 시멘트, 건설, 석유 회사 등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러한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막으려는 조치들에 강하게 저항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믿을 건 정부의 의지뿐이다. 지금 강력한 조치로 코로나 펜데믹에 맞서고 있듯 전 세계의 정부가 기후 펜데믹을 막기 위해 강력한 의지를 가져주길 바란다. 코로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서운 치사율을 발휘할, 어쩌면 전 지구적 멸종을 불러올 수도 있는...

 박정애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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