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동물의 한 종일 뿐… 동물 생명권 보호해야

농장의 돼지 모습.ⓒ픽사베이
농장의 돼지 모습.ⓒ픽사베이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 개 때문에 참 많이도 울었다. 수십 년 전 농촌에서는 복날이면 개고기를 먹곤 했는데 자기 집 개를 먹지는 않고 대신 서로 키우던 개를 바꾸어서 잡아먹곤 했다. 그래서인지 복날이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개와 그런 개를 잡으려고 뒤쫓는 젊은 남자들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며 엉엉 우는 것뿐이었다. 땅을 치고 기둥을 붙잡고 그렇게 울부짖어도 우리 백구는, 우리 누렁이는 소나무에 묶여 몽둥이에 맞아 죽은 뒤 한 그릇의 탕이 되었다.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되었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우는 것과 먹지 않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정도 수준에서 개 도살에 대한 문제의식을 털어버리고 지극히 인간적인 테두리 안의 고민에 휩싸여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소, 돼지, 닭은 열심히 먹었다. 그중에서도 돼지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같이 살았는데도 애초에 그들은 교감이나 공존의 대상이 아닌 철저히 고기로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특히 돼지가 그랬다. 돼지는 사랑스러움이나 귀여움 최소한의 연민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2011년에 보고 만 것이다.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산 채로 구덩이에 내던져지는 돼지의 모습을. 우리와 똑같이 눈, 코, 입을 갖고 있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존재. 두려움과 공포에 가득 찬 표정. 너무나 미안하게도 나는 그들이 당하는 최악의 순간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들을 생명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살처분이라는 가장 잔인한 문제해결 방식이 일회성으로 끝났다면 나의 문제의식 역시 바쁜 일과 속에 금세 잊혔을 것이다. 하지만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십 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강행되는 살처분은 자꾸만 내 양심의 문을 두드렸다. 

자연스럽게 나의 독서는 동물권 관련 서적들로 흘러갔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일을 찾는 와중에 ‘서울애니멀세이브’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단체와의 인연을 계기로 아주 특별한 면회를 다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질(Vigil)’이라 불리는 도살장 면회로 비질(Vigil)이란 함께 도살장을 방문하여 현 육식주의 사회가 가리고자 하는 ‘살육의 시스템’을 목격하고 기록한 후 이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여 폭력적 현실의 증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몇 개월째 정기적으로 경기도에 있는 돼지와 소 도살장에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도계장에도 한 번 다녀왔다. 돼지들은 주로 2층 트럭에 실려 왔는데 트럭은 대형 식당의 식판 반납대처럼 생겼고 그 안의 돼지들은 얼굴까지 온몸에 똥칠을 한 채 잔반처럼 담겨있었다. 

이제 저 죽음의 수용소를 거치고 나면 부위별로 먹음직스러운 고기로 포장돼서 나올 가엾은 어린 것들을 바라보며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살았는지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와서 본들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극심한 무기력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도살장으로 끌려온 어리고 무구한 존재들.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결코 생명수가 될 수 없는 물 한 모금 내밀고 도살장에서 새어 나오는 처절한 비명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소들은 작은 트럭에 한두 마리씩 실려 왔는데 그중 본 젖소는 평생 강제 임신과 젖 수탈을 당하느라 말 그대로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다만 여전히 젖이 꽉 차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는 젖무덤은 트럭 바닥에 닿을 만큼 축 처져 있었다. 출산과 모유 수유의 경험 때문인지 평생 착취당하다 저렴한 가공육이 되기 위해 끌려가는 그 모습에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경기도의 어느 한 도계장에서 만난 닭들은 10층짜리 철창에 실려 있었다. 몸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의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는 여리고 가늘게 병아리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알고 보면 그들은 알에서 나온 지 겨우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일 뿐인데 몸만 급격하게 키워 놓은 것이다. 

그나마도 24시간 절식과 오랜 이동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몸을 움츠리고 불안에 찬 두 눈동자로 여기저기 살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누군가 일부러 잡아 뽑은 것처럼 엉덩이 부분의 털이 뭉텅뭉텅 뽑혀 나간 모습이었다. 

새하얀 함박눈이 주변을 빛나는 흰색으로 덮던 지난 겨울의 어느 날, 나는 조용히 울먹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비질(Vigil)을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이제 갓 물이 오른 어여쁜 새순들이 온 세상을 연두색으로 물들이는 이 봄날에도 나는 자꾸만 설움에 북받친다. 

동학에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음식 재료라 불리는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천부 생명권’을 갖고 태어난 주권자라는 의미이다. 특히 성경의 창세기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인간과 동물은 6일째 되는 날 같이 창조된 동료 피조물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일 뿐이다. 그런데 단지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다른 종의 동물을 절대 고통의 시스템에 가둘 권리가 있는 것인가. 과연 진정한 인간의 권리란 무엇인가. 

나는 이제 땅을 치고 기둥을 붙잡고 ‘제발 죽이지 말라.’고 울부짖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가 아니다.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둔 나름 성숙한 한 인간으로서 하늘이 내게 준 인간의 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다짐하기 위해 장마가 오는 한여름에도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도 도살장을 향한 나의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박정애 시인이자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박정애. 시인이자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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