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의 닭=박정애 칼럼니스트
양계장의 닭=박정애 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잎싹이는 태어난 지 채 5개월이 되지 않으리라고 추정되는 어린 암탉이다. 암탉은 보통 생후 5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알을 낳기 시작한다는데 도계장에서 구조되어 한 활동가의 집에서 보호받은 지 4개월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초란을 낳지 않은 것을 바탕으로 그녀의 월령 수를 가늠해 보았을 때 그렇다.

지난 6월 23일, 나와 함께 동물권 활동을 하고 있던 서울애니멀세이브 내의 소모임 원들이 초복 대비 비질(Vigil : 동물이 고통받는 현장을 찾아 이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할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답사하러 갔다. 답사 장소는 경기도 북부 포천에 있는 한 도계장이었다. 지금은 이미 언론에 공개되었지만, 활동가들이 소모임 원들에게 먼저 공유해 준 답사 현장의 사진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나란히 선 거대한 트럭에는 새하얀 털에 붉고 풍성한 볏을 단 닭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사진에서 본 닭들은 내가 육계 닭을 도살하는 도계장에서 보았던 닭들보다 훨씬 컸다. 종이 달라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육계 닭이 아닌 산란계만 전문으로 도축하는 곳이었다.

육계 닭은 보통 태어난 지 한 달여 만에 도계장에 실려 온다. 그러다 보니 도계장에 실려 온 육계 닭들은 아직 삐악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실상 병아리에 가까운 어린 닭들이다. 그런데 산란계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생후 5개 월여부터 시작해 1년 6개월, 길게는 2년 가까이 400여 개의 알을 낳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도계장으로 실려 오니 한 달 된 육계 닭들보다 몸집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트럭 위로는 짙은 녹음의 나뭇잎들이 휘장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쏟아지는 초여름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케이지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이제 곧 죽음의 수용소로 들어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산란계들의 모습이 생의 절정을 뽐내고 있는 붉은 꽃송이들처럼 보였다. 새하얀 깃털과 새빨간 볏과 빛나는 진초록의 강렬한 색채 대비로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더욱더 참혹해 보이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빛나는 비애감의 광경 속에 작고 어린 잎싹이가 유유히 걷고 있었다. 

답사하러 갔던 활동가들은 논의 끝에 잎싹이를 구조하기로 했다. 구조를 결정하는 순간 어린 닭의 남은 생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또한 잎싹이를 키우고 있던 트럭 기사분들과 도계장 관계자들의 동의도 필요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활동가들이 잎싹이를 데려가는 것을 쉽게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열흘 정도 도계장의 트럭들과 길고양이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나날을 보내오던 잎싹이는 그렇게 한 활동가의 집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활동가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닭으로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산다는 것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간 동물을 비롯해 모든 동물이 자연의 햇살과 바람을 누릴 권리가 있듯이 잎싹이도 매일매일의 산책이 필요했다. 그런데 닭으로서 산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종종 날아오는 야유를 감당해야 했다. 수시로 달려오는 배달 오토바이나 만약에 벌어질지도 모를 길고양이들의 습격에도 대비해야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멘트 바닥에 나뒹구는 못이나 나사 등 잎싹이가 삼켜서는 안 되는 것들도 널려 있었다. 돌보던 활동가가 산책 내내 주의를 기울였지만 모든 위험을 차단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어느 날 결국 잎싹이가 나사를 삼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의사가 수술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특수 동물의 특성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수술을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를 각오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못 깨어날 경우를 각오하고라도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닭이 특수 동물에 속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수술비도 많이 든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하루에 도살되는 닭의 수는 수십만 명(命)이나 된다. 그렇게 흔해 빠진 닭이, 국민 간식이자 단골 술안주인 닭이 특수 동물에 속한다니. 그래 그런 거였다. 애초에 고기로 태어난 닭은 고기로서는 흔하디흔한 음식이지만 살기 위해 태어난 생명(生命)으로서는 참으로 특수한 종에 속하는 것이었다. 초조와 불안 속에 수술이 진행되었고 천만다행히도 잎싹이는 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났다.

그리고 10월 16일, 드디어 잎싹이가 흙 마당과 뒤뜰이 있고 함께 할 세 명의 친구들도 있는 밀양의 한 농가에 입양되었다. 나는 잎싹이의 새집을 짓는 일에 힘을 보태기 위해 과감히 밀양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열심히 삽질해서 땅을 파 잎싹이의 집을 지을 집터를 다졌다. 그 과정에서 지난 몇 개월 동안 잎싹이와 동거를 해 왔던 활동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드디어 잎싹이가 닭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고 말하자 그 활동가가 돌아온 게 아니라 처음으로 그런 곳으로 온 거죠, 라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엄마 품이 아닌 부화장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케이지나 비닐하우스 안에 갇혀서 사육당했을 것이고 비록 자유롭게 돌아다녔을지라도 매일 동족이 살해당하러 실려 오는 도계장에서 지냈던 잎싹이. 구조 이후 살뜰한 보호를 받았지만, 생명으로서 환대받지 못하는 도심의 삶을 살다가 처음으로 닭답게 살 수 있는 곳에 온 것이다.
   
  도살장 앞에서 만난 수많은 동물. 그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너무나도 감미로운 목소리의 ‘눈, 코, 입’이라는 가수 태양의 노래 가사가 귓가에 맴돈다. 

너의 눈 코 입/...... ./나만을 바라보던 너의 까만 눈/향기로운 숨을 담은 너의 코/사랑해 사랑해 내게 속삭이던 그 입술을 난/... .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온 소, 돼지, 닭도 모두 나와 같이 눈, 코, 입이 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까만 눈, 향기로운 숨을 담았어야만 할 그들의 코, 살려줘 살려줘 내게 절규하는 것만 같던 그 입술들을 난….

  도계장을 나온 암탉, 잎싹이. 나는 이제 그녀가 그녀의 삶을 잘 살아가길 바란다. 함께 할 친구들과 흙을 밟고 파헤치기도 하며 진중한 탐구활동에 몰두하며 지내기를. 종종 그 또랑또랑한 얼굴을 보러 밀양에 내려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동물권을 향한 나의 발걸음 역시 계속될 것이다. 

 

박정애 칼럼니스트=오피니언타임스
박정애 칼럼니스트=오피니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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