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의 입장에서 신경을 쓰는 것이 또 있었으니, 바로 내치였다. 도성에 역모(逆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는 것이다. 정통성을 상실한 채 역시 역모로 정권을 잡았으니 또다른 역모가 그들을 때려엎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인조 정권에는 있었다. 더군다나 나라를 정상적으로 이끌어가도 불만이 있을 법한데, 나라의 안위는 생각없이 그들끼리 권력을 나누며 논공행상으로 갈등과 대립이 비등해지고, 권력 가진 자는 횡포를 부리며 부패에 찌들고, 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어떠한 청사진도 없었으니 힘깨나 쓰는 지각있는 자들은 한번 엎어버려? 하는 반기를 들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혹 누가 반역을 꾀하지 않나 하는 경계심이 국정 운영의 기본 틀이 되어버렸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이귀였다. 이렇듯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에 신경을 쓰니 왕은 그를 대단히 신임하고 있었다. 나라가 침략을 당해도 왕권은 유지되지만, 정권안보에서 털리면 명예도, 권세도, 목도 달아나고 만다. 이 얼마나 살 떨리는 일이냐. 그러니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에 신경을 집중하는 이귀가 내내 고맙고 듬직한 것이다. 이렇게 왕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이귀가 그 여세로 조정을 휘어잡은 것이다. 
이귀가 준업하게 꾸짖듯이 말했다.  
“신은 다분히 상의 명을 따라야 하는 법, 거부하는 것은 역적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오. 장 공은 마마께서 분부하신대로 따르시오. 그렇지 않으면 벌을 내릴 수밖에 없소이다!”
왕권을 빌어 자신의 주장을 명토박은 것이다. 그러나 장만이 쉽게 물러설 인물이 아니다. 학문이 뒤지지 않고, 배짱 또한 백만 근 바위 같은 무장인 것이다.  
“못하겠소이다.”
“반항하는가?”
“반항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오.”
장만은 이귀를 곰곰 생각해보았다. 자신을 괄세할 사람이 아닌데 근래 거칠게 압박한다. 사적 연분으로 따지면, 이귀는 장만의 처삼촌이다. 말하자면 장만은 이귀의 조카 사위인 것이다. 나이 또한 이귀가 아홉 살이나 많다. 나무랄 데 없는 대표적 명문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사 문제에 관한 한 장만을 따를 수 없었다. 장만의 입장에서 이귀가 주제넘게 전문가연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세도가의 만용일 뿐, 자칫 나라를 그르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주접 떨고 있네” 하는 마음으로 한마디 보탰다. 
“찬성 나리께서 더 이상 군사문제에 개입하면 내 칼이 울고 말 것이오!”
“뭣이? 저런 못된...”
이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다른 신하들이 달려들어 뜯어말렸다. 완력으로 하면 장만에게 한 볼테기도 안되는 사람이 대드는지라, 신하들이 두려워서 뜯어말린 것이다.  
“군사 전략은 아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병사들 목이 수백, 수천이 달린 일이오. 그러므로 나대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시오.”
“저런 고현...”
군사 전문가가 제시한 안주성 방략을 이귀가 이처럼 집요하게 반대한 까닭이 무엇일까. 유추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장만에 대한 열등의식이었다. 권력은 아비 자식간에도 나누지 못하는 특수 영역인 법, 처삼촌·조카사위 지간이라도 권력에 관한 한 투기와 시샘이 없을 수 없다. 조카란 놈이 먼저 출세해버린 것이 두고두고 자존심 상하게 했던 것이다.  
이귀는 인조반정 공신인데도 봉군이 되지 못한 반면에, 장만은 이괄의 난 평정으로 옥성부원군으로 봉군이 되었다. 젊었을 적에는 젊은 장만이 뻔질나게 집에 드나들며 안부를 사룄는데, 요즘에는 뜸하고, 거기에 어느결에 자신의 위치를 추월해버렸다. 조카가 봉군이 되니, 뿔이 난 나머지 축하하기는커녕 질투하기에 이르렀다. 공연히 미운 것이다.  
겉으로는 대인인 척 하지만, 내심으로는 하찮은 감투 하나로 성질 뻗치는 것이 사대부의 성향이자 기질이다.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찌질이가 되는 것이다. 여염집의 필부보다 못한 잔챙이들이 많다. 그런 자들이 고상하게 문자 쓰며 포장을 했을 뿐, 내면은 이렇게 지저분한 것이다. 이런 태도들이 당시의 사대부 풍조였으니 이귀만 탓할 수는 없었지만, 사소한 자존심 하나로 나라의 운명을 틀어버리는 일이 잦으니 나라가 멍들고, 괜한 백성들만 못살 일이 생겼다.   
두 사람의 대립이 얼마나 심했는지, 인조실록(1625년 7월 9일자) 기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옥성부원군 장만과 우찬성 이귀가 어느날 공좌(公座:공식 회의)에서 서로 힐난하여 모두 불평스런 뜻을 품고 각각 차자(箚子: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간단한 상소문)를 올려 해면(解免:관직과 직책에서 면직)해주기를 청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찬성 이귀, 옥성부원군 장만은 모두 원훈(元勳:나라를 위한 가장 큰 공)의 중신으로 마땅히 예로써 서로 공경하고, 의리로써 서로 우대하며,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또한 가부를 서로 도와서 국가의 위급한 상황에 따라 처신해야 한다. 그런데 감히 몇마디 말을 가지고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 차자를 올려 체직(벼슬을 멈추게 하는 일)시켜 주기를 간청하기까지 하였으니 너무도 외람스럽다. 마땅히 추고(推考:벼슬아치의 허물을 심문하여 벌을 줄 것인지의 여부를 따짐)하여 후일을 경계해야 할 일이로되, 지금은 나라의 안위가 우선인고로 차자를 도로 내주라’ 하였다.

이런 대립의 결과 인조와 호흡을 맞춘 이귀는 위세가 더욱 당당하더니 마침내 그 이듬해 연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충성의 증표로 봉군이 되니 이귀의 위세는 더욱 거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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