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이귀가 내놓고 군사문제에 개입했다. 
“거듭 묻건대, 변경에서 적군의 침입에 대비하기보다 대규모 병력이 서울에서 한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에 두겠다는 저의가 무엇인가? 접적(接敵) 지역인 의주에서부터 방어해야 하는데, 의주나 창성, 구성에 비해 내륙으로 더 깊숙이 내려온다는 것이 좀 의심스럽지 않소. 이상하단 말이오? 혹 시중에 떠도는 무엇을 꾸미겠다는 것 아닌가?” 
이귀는 두고두고 이괄의 난이 눈에 밟혔다. 이괄의 난 이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안주는 의주나 창성에 비해 평양 가까이 있는 데다, 평양을 접수하면 조선의 반을 집어먹는 셈이고, 그리고 그 힘으로 서울을 단박에 함락하리라 의심해볼 수 있었다. 인조나 장만이나 이귀가 이괄의 난 후유증을 겪은 아픔은 모두 같지만, 대응 양상은 이렇게 각기 달랐다. 조그만 사안에도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이귀는 자신만이 왕을 옹위하는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인조반정 혁명을 주도했던 선봉대장 김류가 요직을 거치긴 했으나 여러 직임을 소홀히 했을 뿐 아니라, 휘하의 군관을 자신의 가족과 재물을 보호하는 사병(私兵)으로 동원하고, 그 아들 김경징마저 병사(兵事)를 안이하게 처리하니 권력의 무게추가 자연 이귀에게로 집중되었다(김경징은 병자호란 시 왕비가 피난간 강화도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형). 
이렇게 김류가 권력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나자 대신 이귀가 득세했던 것이다. 그는 나랏일의 기본은 왕권의 강화에 있고, 왕의 옹위만이 국사를 펼치는 기본이라고 믿었다. 
장만이 이귀의 이상한 말을 듣고 주저없이 말했다.  
“이괄의 난 이후 국방 병력이 턱없이 부족한데 제1선, 2선, 3선을 칠 수 없소. 전선이 길어지고, 병참선도 길어져서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형편없이 취약한 병력으로 평지에서 기병 위주의 후금 군사를 당해낼 수 없소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대규모 후금 기병을 막아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나마 버틸만한 요새지로 안주를 선택한 것이오이다! 최소 병력으로 최대 전과를 올릴 수 있는 최상의 방어지요.”
그러나 이귀는 생각이 달랐다.  
“이괄이란 놈이 북변(北邊:북쪽의 가장자리, 즉 국경지대) 가까운 영변에 주둔했어도 득달같이 서울로 들이닥쳤는데, 그보다 훨씬 남쪽인 안주에 대병력을 집결시켜 놓으면 자칫 나라가 후금군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군에게 당하는 것 아닌가, 의심해볼 수 있단 말이오.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가? 장만 장군은 믿지만, 휘하 장수들을 다 믿을 수 있소이까? 이괄이란 놈이 상관인 장만 도원수를 박차지 않았소이까! 불과 몇 년 전 일이올시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북변 가까이에 군사를 묶어둘 심산이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국록을 먹는 신료로서 입을 닫아두기가 민망하고, 실세 중의 실세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찬성 어른의 말씀이 백번 천번 옳으신 지적입니다. 장만 도체찰사가 의주 방비를 거절하는 것 같으니 그렇다면 신은 그 대안으로 의주 바로 밑인 창성을 천거하오이다.”
“아니지, 정 그렇다면 구성이 더 낫습니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이란 곳 있지 않남요. 나는 거기를 천거하고 싶소이다.”
“곽산 정주도 지킬만한 목이오.“
논의는 백화제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전술적 가치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지명을 들고 나와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주성 방략에 관한 한 장만이 물러설 수 없었다.  
“가을철 방수(防戍:국경을 지킴)에 때맞추어 서로(西路)로 가서 본도의 여러 장수들과 직접 방수의 방도에 관해 논한 바 있습니다. 변방에 대한 대비가 소홀한 것을 보고 신이 내려가 검척(점검하여 바로잡음)했었나이다. 3남의 군사를 이미 조발하지 않았으니 사세가 미치기 어렵습니다. 황해도 군사 1천 9백명을 몇 조로 나누어 변방을 방비케 한다면, 제2부대가 방비에 나가는 시기는 얼음이 얼 때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면 제3부대를 더 들여보낼 수 있고, 또 부족하면 제4부대도 들여보낼 수 있으니, 이와같이 한다면 일단 창성, 안주에 나누어 지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산시키면 무너지기 쉽고, 군무는 멀리서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신이 직접 내려가서 서로(西路)의 제장(諸將:여러 장수)들과 직접 논의하고 올 것입니다. 사변(事變)이 있게 되면 남쪽 지방의 군사도 반드시 조발해야 할 것이니, 모름지기 3도의 수신(帥臣: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의 병칭)들에게 미리 군사를 정돈하게 하여 아침에 영을 내려 저녁에 출동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이런 내용을 타일러 경계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을 듣고 왕이 “신칙(申飭:단단히 타일러서 조심함)하게 하라”고 일렀다. 그러자 이귀가  소리질렀다.
“마마, 이 말 듣고 이래라, 저 말 듣고 저래라 하면 어느 것을 따르겠습니까. 영이 서지를 않습니다. 아까 신의 말씀을 듣지 않았나이까?”
“그런가. 그렇다면 좀더 논의해보지.”
왕의 판단력은 흐미했다. 장만이 지지 않고 나섰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평안도의 지형은 산세가 쭉 뻗어있는데 영변과 안주 사이는 개미 허리처럼 가늘고 좁습니다. 적군이 강변을 거쳐오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 길을 경유할 것이니, 모름지기 먼저 안주성을 쌓아 지키고 있다가 적을 저지하는 본거지로 삼는다면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전략지입니다. 이렇게 하여서 아군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공격을 효과적으로 퍼부을 수 있는즉, 안주성이라야 오랑캐 기병부대의 기세를 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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