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이 거듭 힘주어 말한 것은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천혜의 요새지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평야지대인 탄금대에서 왜적을 맞아 싸우다 병사들이 졸지에 전멸해버린 전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군은 탄금대 전투 승리의 여세를 몰아 파죽지세로 북상해 서울을 점령했다. 그런 때늦은 후회를 한 것은 그나마 더 이상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절박성 때문이다. 병가에 이르러 실패는 병가지상사라 했지만, 번연히 아는 전술을 포기하고 적당히 덤비는 것은 두 번 실패를 재촉할 뿐이다. 한번으로 족한 것을 왜 또 저 죽으려고 가장 나쁜 구렁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가.  
그런데 인조는 이귀에게 타박을 맞은 때문인지, 듣기 싫다는 듯 장만을 향해 엉뚱하게 말문을 돌렸다.
“장만, 당신은 안주에 성 따위를 쌓는다고 하였지만, 기실은 평양으로 내려가 수비의 일을 조치하여 그곳에서 지킬 수 있는 근거지를 만드려는 것 아닌가?” 
무슨 말뜻인지 얼른 알아듣기 어려웠다. 대개 실력은 없고 지체가 높은 자들이 말을 분명치 않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때 간신배들은 멋대로 해석하여 그의 권위를 세워준다. 여러 가지로 해석하다 보면 대안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모호해도 통용이 되는 것이다.  
장만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왕이 내친 김에 말을 보탰다.   
“물이 좋은 곳이 평양이라던데, 그래서 평양 가까이 가겠다는 것인가? 그곳에 정녕 숨겨둔 여인이라도 있더란 말인가?”
이런 개새끼가 있나. 명색이 왕이란 자가 국가안보를 위한 엄중한 회의석상에서 농담 따먹기 하나? 장만은 성질대로라면 칼을 뽑아 인조의 배때지를 쑤셔박아버리고 싶었지만, 이는 천하에 없는 불충에 반역인지라 그런 생각을 꿈에도 가져보지 못하고, 대신 마음만 몹시 심란하였다. 그러면서 인조는 광해보다 훨씬 어두운 암군(暗君)의 기질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마음 속으로 탄식하였다. 광해는 스스로 최소한 사리를 분별할 줄 안다고 했는데, 인조 이 사람은 콩과 보리도 분별할 줄 모르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이다.   
안주냐, 의주냐, 구성이냐. 창성이냐로 방어할 장소를 가지고 지지고 볶는 사이, 마침내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입만 살았던 중신(重臣)들이 일제히 도망을 갔다. 바람보다 먼저 흔적도, 냄새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왕이 좀 모자라거나 철학이 없으면 마침내 신하들에게 국정이 휘둘리고 만다. 대신들은 왕권을 보위한다고 하지만, 기실은 왕권을 그들의 이익을 담보하는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이들이 바로 기득권층이다. 이런 기득권층과 타협하지 않으면 왕도 어쩌지 못한다. 어느 시대건 권력의 공평성과 도덕적 이상을 위반하는 것보다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이 더 엄중한 일로 취급된다. 그래서 정치적 승자나 기득권층의 배척을 받은 세력은 역적이 되거나 불충이 되어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힘든 경우도 있다. 지금이 딱 그러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것처럼 발언이 당당하던 자들이 위난에 처하자 벌레같은 촉수를 휘둘러 재빨리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개자식들....”
장만이 씁쓸하게 분노했지만 시간은 이미 늦었다.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한 사이 후금군이 기세좋게 압록강을 질풍노도처럼 건넜다. 전쟁이 터지자 조선군은 무인지경으로 발렸다. 평지에서는 어떻게 대적할 수가 없었다.
“병장기를 되는대로 안주성으로 옮겨라! 하나라도 축나지 않으려면 어서 빨리 옮겨라! 저것들이 가져가면 우리는 다 죽는다!”
병력과 무기 손실, 그리고 무기 이송에 시간이 걸려 인적 물적 손실이 막대했다. 
“나머지 군사는 전투대형으로 헤쳐모였! 전열보병은 앞에 서고, 총검부대는 뒤에 서라. 포병부대는 산 위로 올라가라. 싸게싸게 움직여랏!”
중군장이 외치고, 부장들이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군사들을 독려하는데, 그 사이 많은 병사들이 나가 떨어졌다. 적의 홍이포가 펑펑 터뜨려진 것이다. 홍이포는 네덜란드인이 개발해 명나라에 보급된 것이지만, 명나라 장수들이 후금에 투항하면서 가져온 무기들이었다.
적의 침공로는 의주로와 창성로 두가지 길이 있었다. 두 길 모두 안주성에서 만나게 된다. 대규모 전쟁은 반드시 안주성 길목에서 치르게 되어있다. 한양으로 내려가는 길목인 안주성에 중진(中鎭)을 세우고, 적은 숫자지만 용맹한 군사를 안주성에 배치시켜 그곳에서 한판 승부를 보는 전략을 세웠다.  
안주성 방략은 얼핏 보면 평안도 변경을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청천강이 배후지로서 첫 번째로 방어할 수 있고, 다음으로 군사 요충지인 안주성에 군사를 집결시켜 대비하고 있다가 적이 침공하면 성을 방패삼아 일합을 벌이면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장만 팔도도체찰사는 정충신을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寧邊大都護府使)에 임명하고, 평안병사 남이흥을 안주성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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