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립이 궁에 이르자 그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적도가 제 발로 들어오는군.”
신료들은 그를 완전히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후금에 빌붙어 결혼까지 하고, 살이 피둥피둥 쪄서 신세가 훤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고 어떤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신료들은 또 부원수 김경서를 고국으로 밀서를 보냈다고 밀고하여 죽게 만들었다고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강홍립도 후금의 사정을 은밀히 살펴서 조선에 알렸다. 그러나 후금 군사력이나 후계 구도를 알리는데 김경서는 호사를 부리는 강홍립을 씹는 밀서를 보냈던 것이다. 
강홍립의 밀계에는“추장의 아들 망고태(다이션)와 홍태시(홍타이지)가 조선을 그대로 두고 먼저 요동을 칠 수 없다고 말하므로, 추장이 여러 아들과 장수들을 모아놓고 날마다 비밀스럽게 모의하고 있습니다. 혹시 조선변경에 쳐들어갈 우려가 없지 아니합니다”라고 하였다(연려실기술). 그런데 같은 책에 정반대되는 내용의 기록이 있었다. 김경서가 오랑캐 속에 있으면서 남몰래 일기를 써서, 오랑캐 사정을 기록하고, 강홍립을 모함하는 글을 본국으로 부치려고 했는데, 홍립이 이를 발각해 오랑캐에게 고발하여 경서가 살해당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긴 강홍립은 투항 이후 8년 동안 후금에 억류되어 있었다. 그는 포로 생활 중 후금의 내부 사정을 광해군에게 밀계(密啓)했으나 인조 정권에는 보고를 하지 않았다. 인조 정권이 그를 괘씸하게 여겼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강홍립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올린 첩보 장계는 광해군이 외교를 펼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됐지만, 인조 정권은 애당초 후금을 적대시하니 밀서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오해만 증폭시킬 뿐이었다.  
“심양 생활이 얼마나 좋더노? 깨가 쏟아지더노?”
한 신료가 강홍립을 앞에 두고 야지를 놓았다. 처첩을 두명이나 두었다는 소문을 듣고 조금은 시샘도 나는 것이었다. 
“왜 그러시오. 난 후금의 강요로 한족 여인과 결혼했을 뿐이오. 포로의 수장에 대한 예우를 받았던 것이오.”
“뭣같은 소리하네. 회유당해서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 아닌가. 첩자노릇하려고 온 것 아닌가 말이오! 당장 하옥해야 합니다.”
신료들은 당장 역적이자 매국노라고 하면서 처단해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강로의 침략(姜虜入寇)’으로 오다니, 그대가 정녕 조선 침략을 주도던 것인가.”
“내 얘기 잘 들으시오. 후금군 지휘부가 소인을 대동한 것은 조선과의 교섭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오. 나는 양국이 싸우지 않고 화친을 성사시키는 데 역할을 하러 왔소. 후금의 실체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조선군이 일방적으로 패퇴할 것이 우려되어 조선 백성들이 후금군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것이란 말이오. 일단 적장을 만나시오. 적장이 만나자고 하는 것을 외면할 필요는 없지 않소? 저것들은 지금 명나라 침공에 혈안이 되어있고, 조선이 뒷전에서 괴롭히지만 않으면 아버지 대에 이어서 친선과 교린을 이어가려고 하는 속셈을 갖고 있소.”
“입은 살아가지고, 고따우 산적 무리에게 빠져서 조선과 명국을 이간질하고, 그것도 후금 군사를 융숭히 대접하라고? 이 자, 당장 하옥시켜야 합니다.”
“나를 하옥시키면 후금이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허허 갈수록 지랄하네. 하는 짓 보니 완전히 후금군 세작이야.”
강홍립을 ‘강로’로 매도한 인조 정권의 신료들은 정적 광해군과 강홍립에 대한 반감으로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였다. 꽉 막힌 성리학적 경직성 앞에서 사대 명분만 깃발처럼 나부끼고, 합리적인 방어 대책이나 외교술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 신료가 득의만만하게 말했다.
“마마,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모문룡 군대가 있습니다. 가도에 주둔하고 있는 모 군사는 후금군이 나오면 한달음에 발라버릴 것이오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모문룡 군은 후금의 공격을 막아주겠다고는 했으나 용골 산성의 첩서를 가져가던 조선군 전령을 잡아 살해했으며, 안융창(安戎倉:평안도 청남구 신리 북쪽에 있는 고려군의 군량창고 터)에 있던 난민들을 공격하여 민가를 불태우고 백성을 마구 죽였다. 평안도 정주에 피난 갔던 백성 수천 명을 공격하였으며, 이중 3백여 명만 물에 뛰어들어 간신히 죽음을 모면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물정 모르고 모문룡 군이 조선 백성을 살리고, 후금군을 막아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모문룡군은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군선 50여 척을 이끌고 평안도 의주로 향했으나, 후금군 기병 20여명을 만나자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버렸다.
인조는 명과의 명분·의리에 얽매여 후금을 배격하다 호란을 자초했고, 그때까지 모문룡은 방관하거나 오히려 조선 백성을 괴롭혔다. 전략이 완전 잘못 짜여짐으로 해서 호란은 엉망진창으로 흘러들어갔다. 정묘호란은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는데 전략상의 미숙으로 이렇게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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