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군신(君臣)들은 태평하였다. 외적의 침략을 물리칠 능력이 없으면 그에 대비해 힘을 길러야 하는데, 일선의 장수에 맡긴 채 공맹을 달달 외우는 것으로 모든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종주국 명의 군사적 지원을 믿고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모문룡의 도발에서 보듯, 명나라도 적이라면 적이었다. 상국이라 해도 주권국가를 위협하면 엄연히 외적이다. 그런데도 사대부는 따르는 것만이 나라의 올바른 국정방향으로 인식하였다. 지배체제의 국가 이념으로 강화하였다. 나라의 존망을 상국을 섬기는 대의에 맡긴다는 것, 그 이외의 대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명나라 이외의 나라는 모두 적이 되었다. 
그 이론과 행동 강령이 척화(斥和:화친을 배척)였으니, 주화(主和:전쟁을 피하고 화해하며 공존하자는 논리)는 비겁한 자의 망국적 행동이 되어 배척되었다. 시대상황론을 설파하면 척결해야 할 매국노로 공격을 받았다. 그로인해 옷을 벗고 유배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러니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이상정치를 꿈꾸는 정치가들이 자리를 잡기 힘들었다. 아니, 배태 자체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도 현실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실천 중심의 인물이 있었으니 장만이다. 그로인해 궁궐 밖 변방에만 머물렀으나 현장을 본 사람으로서 외교도 국가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굽히지 않았다.   
장만은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후금과 타협하여 공존했고, 그 노력이 결실을 보아 한때 북방 변경은 평화로웠다. 후금군은 국경을 넘었으나 장만이 강력하게 방어하는 힘과, 다른 한편으로 유연한 협상 정신에 따라 국경선을 긋고 공존의 기틀을 마련했다. 물론 후금이 순순이 돌아간 것은 명나라와 전쟁 중이던 때, 병력을 조선에 오랫동안 묶어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나 그 점 장만이 적절히 이용하였다. 
“저것들이 침략해오면 장기전으로 대비하라. 스스로 지칠 때까지 버텨라.”
청야전술이란 방략이었다. 방어군 측에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감추거나 이동시켜 적군이 보급의 한계를 느끼고 지치게 만드는 전술. 자군의 군수물자 및 식량, 민가의 가옥, 수확할 수 있는 식량, 공급받을 수 있는 물 등 모든 것을 차단해버리는 전략이다. 그리고 협상의 문을 항상 열어놓는다. 
아민은 전선에서 한윤을 불렀다.
“후금 사절이 협상을 위해 조선에 들어가면 왜 소식이 없는가.
”사정이 악화될만한 이유가 있소.“
”이유가 있다고?“
”그렇소이다. 후금 사절들을 경쟁적으로 얕보고 밟아버리려는 태도 때문이오. 그래야만이 충신이 되니 사절이 가는 족족 함흥차사가 되는 것이오.”
“사절을 체포하는 것이 외교 법도상 정당한가. 웃기는 놈들이군. 힘이 없으면 어떤 기개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모르는가? 내가 알기로 외교를 정상화하려는 장만과 최명길이 있는데 왜 그들은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가.”
“실용 노선은 사대 명분론에 먹히지 않소. 조선 사대부에게 뿌리깊이 박힌 사상이 있으니, 불사이군(不事二君)이오. 이런 때 후금과 외교협상을 갖자는 것은 시정잡배들의 장난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오. 지난 두 번의 가혹한 전란을 겪었으면서도 지배층의 인식은 이렇게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소. 성리학의 가르침대로 움직이고, 성리학의 이론을 따르지 않으면 이단시되고, 심지어 역적으로 몰려 죽기도 하오이다. 현실적으로 내일에 대한 대비책보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 부모와 자식간의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충효가 나라를 다스리는 중심이 되고 있을 뿐이오.”
“그것은 생할 준칙으로 여기면 되는 것을 나라의 명줄을 잡는 이념의 근간으로 삼는다? 미친 새끼들이군.”
아민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후금의 외교사절이 조선에 들어갔으나 답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조선 대신들은 ‘나라가 망할지라도 후금과 친선을 맺지 못한다’고 명토박았다. 조명 연합군이 사르후에서 참패하여 강약이 가려진 상황에서도 조선은 후금국을 만인(蠻人)으로 멸시하였다. 
“요것들, 지금도 여전히 우리 부족을 짐승 가죽 뒤집어쓰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피범벅이 되도록 짐승의 피를 핥아먹고 히히덕거리는 야만인으로 본다 이 말이지? 이번 기회에 단단히 혼내줘야 한다!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들어줄 것이다. 왜종(倭種)보다 더 험하게 발라줄 것이다!”
아민은 스스로 부아를 끌어올렸다. 
아민은 도대체 조선 사대부의 배짱을 알 수 없었다. 무지한 탓이려니 여기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이처럼 색맹인가. 조선반도의 대여섯 배나 되는 만주벌판과 요동 반도, 몽골 일부를 점령한 후금을 실체적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짐승 사냥으로 먹고사는 수렵꾼으로나 여기니, 그들의 안목이 도대체 어디에 가 있단 말인가. 변화하는 동양 삼국의 정세를 살펴보는 시야가 그렇게도 좁단 말인가. 
그러나 아민도 조선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실묵수적 안주로도 떵떵거리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열린 세계관을 가질 필요가 없는 곳이 조선이다. 내부적으로 문하(門下:스승과 제자의 동문 세계) 중심으로 뭉쳐서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으로 권력을 쥐는 정치 기술을 간과하고 있다. 전쟁과 같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세력 몇몇이 짜고 치면 권력을 단단히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숨통이 막히니 조정 내부에서 최명길을 위시한 비변사의 일부 관료들이 후금과의 화친을 도모하는 기운이 싹텄다. 최명길의 제의에 왕은 한때 호응하려고 했다. 그러자 대각(臺閣:사헌부와 사간원의 총칭)에서 당장 들고 일어났다. 
“전하, 왜 그리 줏대가 없으십니까. 어찌 천한 것들과 교섭하여 선대들이 이룩한 깨끗한 나라를 흐려놓으려 하십니까.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지금 조정 대다수는 척화가 중심이잖습니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까? 보시다시피 주화론자들은 쥐새끼같은 간사한 무리들입니다. 선대들이 이루어놓은 깨끗한 나라를 오염시키는 개자식들입니다. 따라서 분열을 막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도 강홍립을 앞세운 후금의 사절들을 당장 목을 치십시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오랑캐 무리가 신성한 궁중에 들어와 상감마마의 용포를 더럽힌단 말입니까. 배신자 강홍립부터 치십시오.”
이처럼 대명 의리에 기반한 척화론자들은 당파를 초월하여 당당하였다. 실리적 판단 따위는 쥐새끼 같은 사악한 행동일 뿐이었다. 이것이 정묘호란을 부른 단초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불과 10년 후 병자호란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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