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감마마, 오랑캐가 쳐들어오고야 말았습니다.”
내시 김완복이 종종걸음이지만 달려와 다급하게 아뢰었다. 왕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장만은 무엇을 했길래? 못막았단 말이냐. 당장 장만을 불러라.”
긴급 호출에 장만이 말을 달려 어전에 당도했다. 어전에는 이미 3정승을 비롯해 대신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또 피난을 가야 하는가. 어쩌자고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단 말인가. 장만 팔도도체찰사는 입이 있으면 말해보라!”
장만이 정중히 아뢰었다.  
“신 또한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 증원군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증원군이 도착했다면 한달, 두달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후금군은 지친 나머지 돌아가거나 패퇴했을 것이며, 그 사이 우리 군사는 힘을 축적하였을 것입니다.”
후금군은 왕을 빨리 사로잡아 조선 전체를 조기에 항복시키는 게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진격했는데,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안주성에서 조선군의 저항에 맞딱뜨렸다. 
“이때 증원군이 왔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는데, 증원군은 끝내 오지 않았나이다. 황해도 군사는 오다가 중도에 도망가버렸습니다. 마마, 고립된 장수의 고독을 아십니까?”
“시끄럽다. 어느 안전이라고 농담 따먹기 하는가.”
우상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후금 오랑캐의 직접적인 침략을 겪어본 적이 없었던 인조는 안이한데다, 전략적으로 굉장히 무능했다. 무식한 것이 용감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지, 눈밭으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국방에 대한 개념마저 없으니 누가 소리지르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전문가의 식견은 안중에도 없었다. 
군 사기를 위한 전방의 병사에 대한 처우는 물론 지원병조차 보내주지 않아 자국 군대의 지리멸렬을 불러왔다. 이괄의 난에 겁이 난 조정은 군사가 훈련하고 있다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다. 이러다 군사반란에 정권이 무너지는가 의심만 하고 있었다. 
우상이 거들었다.
"오랑캐의 제장은 한낱 하찮은 자들이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자고로 훌륭한 장수 한 명만 있으면 병력이 적어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소. 어찌 제어할 만한 사람이 못되었는가. 그 옛날의 실력은 어디로 사라졌소?“
“다시 말씀 드립니다.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오랑캐 사절단이 왕실을 찾았을 때, 답변만 제대로 주었다면 전쟁까지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명의 황제에게 보낼 조공물 10분지 1만 써도 그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외교력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모문룡의 하인 왕학승이 휘하 50을 거느리고 평양 인근의 군현들을 마음대로 들락거리며 약탈하고, 고을 수령을 붙잡아 가두고 여인네들을 능욕하는 몹쓸 짓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대화를 트기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차단하였습니다. 굳이 멸시하지 않고 따뜻한 밥상만 차려주었어도 대접에 굶주려온 야만족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작은 것 하나 챙겨주지 못하였습니다.”
장만은 현실주의자였다. 그런데 장만의 이런 사상을 조정은 여지없이 짓밟았다. 알다시피 조선은 망국에 이르기까지 고매한 성리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흐름이 일관되게 중심을 이루니 교조주의적 성리학 담론을 남긴 위인들만이 조정의 주류가 되고, 지휘부를 장악했다. 현실주의적 사상을 가진 장만이나 최명길 등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명에 대한 명분론에 휩싸인 인물들이 가득했다는 것은 조선의 진로를 너무 경직되게 끌고갔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장만이 답답한 나머지 다시 말했다.
“후금은 누르하치 사망 이후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권력투쟁이 심합니다.”
“그들의 권력투쟁과 조선 침공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연관이 있습니다. 누르하치 후계를 놓고 그 자식들과 조카들이 뒤엉겨서 권력투쟁을 벌여왔습니다. 그자들이 조선을 침공한 것이 이런 내부 대립과 균열 반목과 충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사실상의 장남 다이샨, 일명 귀영개가 8남 홍타이지에게 밀려서 압록강 너머 평안도로 도주해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런 일이 있었소?”
“있소이다.”
여진족을 통일해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가 북방 영토를 확대해갈 때 그의 곁에는 후계 구도를 꿈꾸는 세 아들이 있었다. 장남 추옌과 둘째 다이샨(代善), 그리고 8남 홍타이지다. 추옌은 아버지의 첩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일찍이 살해되고 다이샨이 적장자로 나섰다. 다이샨은 변경에서 조선의 장만과 정충신과 교류가 있고, 친선을 유지한 장수로 조선과의 화친을 주장한 사람이다. 조선을 쳐 후방을 안정시키자는 거칠고 도전적인 홍타이지와는 대조선 인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패륵이었다. 조선은 그를 지렛대로 삼아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오피니언타임스는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