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행궁(行宮)은 후금과의 협상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팔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최명길이 어전으로 나아갔다. 
“전쟁을 하게 되면 조선 팔도가 완전히 발리게 됩니다. 백마산성전에서 임경업이 패퇴하고, 용천에서 정병수 의병, 이립의 의병이 패배하였습니다. 안주성 싸움에서도 밀렸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전력은 진이 다 빠졌습니다. 우리의 전력이 터무니없이 약한데 무엇으로 당하겠습니까. 다른 해결 방법이 없으니 협상 조직을 구성하겠습니다. 허세로써 싸우는 것이 외교 협상이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보렸다.”
왕은 힘없이 대답했다. 하긴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최명길의 주장으로 화친론이 본격 대두되고, 결국 후금과의 사이에 형과 아우의 맹약을 맺기로 했다. 그럴 때마다 방해세력이 나타났다. 곧 죽어도 한마디 내지르는 세력이다. 틈만 나면 항전론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장만이 저녁에 최명길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최명길의 말을 듣고 장만이 탄식했다. 
“전쟁 나면 지놈들이 먼저 도망갈 거면서 싸우자고 하니 대책없는 것들이군.”
“전쟁이 나도 백성들더러 싸우라 하고 지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이익을 챙길 터이니, 손해볼 턱이 없지요. 나라가 병들고 무너져도 좋다는 자들, 진정한 싸움꾼은 안싸우고 이기는 데 있는 것을 정녕 모르는 자들입니다.” 
“화의 협상도 전략이다. 밀어붙여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항을 이겨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언제 그대가 따뜻한 밥 먹었던가? 외롭더라도 밀어붙이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 화의를 준비하라.“
최명길이 다음날 다시 조정에 나가 설파했다. 
“항전파가 끝까지 싸우겠다면 그대들의 자식부터 먼저 전선에 내보내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닥하시오. 기득권력이란 것들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고 백성들의 희생만 강요하니 어느 백성이 따르겠소? 요즘 시처에서 들려온 욕설들 못들으셨습니까.”
“무슨 욕설이오?”
“씨발놈들 지랄하게 자빠졌네 라고 하지요. 개좆같은 세상이라고요.”
“저런 쳐죽일 놈들.”
“자, 그들 말을 새겨봅시다. 특권만 향유하는 사대부의 이따위 나라에 어떤 애국심이 생기고, 나라 발전의 동력이 생기고, 단결력이 생기겠소이까? 나라가 힘이 없으면 처참한 굴욕을 당하는데, 이런 때 가진 자들이 솔섢수범하여 자식들 내보내고, 돈을 풀어야 백성들이 따르지 않겠소이까? 싸우려면 그것부터 하시오.”
“말조심 하시오. 그렇게 거칠게 입을 털면 한 방에 갈 수가 있소.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한 방이 아니라 두 방에 가더라도 할 말 좀 합시다. 지금 싸우게 되면 필연코 우리는 우리의 힘이 없다는 것이 그대로 노출될 것이오. 그러나 칼집에서 칼을 빼들기 전이 가장 위협을 주는 것이니 칼을 뺄 듯 말 듯하며 저것들이 요구할 때 협상에 응하는 것이오. 허세부리며 뻗대다 개창날 수 있소. 그런 것은 불쌍한 백성들에게는 통용될지 몰라도 직진하는 저 거친 후금 오랑캐에겐 통하지 않소. 저놈들은 싸우자고 하면 안면몰수하고 밀어붙이오. 그러면 군사력없는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소. 저놈들이 원할 때 칼을 칼집에 넣으면서 협상에 응하는 것이오. 후금 협상 사절 유해를 부르겠습니다.”
신료들이 입맛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딴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말없이 뒤로 물러앉았다. 
음력 1627년 2월 9일 후금의 부장 유해(劉海)가 강화도 행궁으로 들어왔다. 유해는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그들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조선은 명나라의 연호 '천계(天啓)'를 쓰지 말 것. 그리고 우리와 화의하는 증거로 왕자를 인질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바이오. 그것으로 형제지국의 의를 증명하겠소이다.”
최명길이 나섰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요구 조건이 있소. 화약(和約)을 맺으면 평화를 나누게 되니 후금군은 즉시 철병할 것을 요구하오. 후금군은 철병 후 다시 압록강을 넘어오지 않겠다는 약조를 하시오. 그것이 형제지국의 우정의 표시요.”
“좋소. 접수하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후금과 화약을 맺지만 명나라와 적대하지 않는 것을 양해하시오. 그들과 우리는 3천년의 인연이 있소. 이것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조선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소. 하나를 택하면 다른 것을 버린다는 것은 외교 도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오.”“그 점 배울만하오이다.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약조를 지킨다는 보증으로 조선의 왕자를 본인의 나라로 보내줄 것을 다시 정중히 요구하는 바이오.”
최명길은 잠시 생각하였다. 인질 하나로 화약을 성공시킨다면 나라 전체로 보면 결코 밑진 장사가 아니다. 하지만 명예롭지 못하다. 조선 정체성의 근간을 어디에 버린 것만 같다. 
“그것은 어렵소. 대신 왕족을 보내겠소. 조선은 왕자나 왕족이나 모두 조선을 상징하는 인물들이오.”
“안된다니까. 왕족이라면 십촌, 이십촌도 있을 것 아니오. 왕자라야 우리가 믿을 수 있소.”
“왕자가 스물여섯 명이나 되오이다. 상징적인 인물로는 약한 면이 있잖소이까. 그 많은 수 중에서 제일 헤부작한 왕자를 보내면 후금 또한 덜떨어진 왕자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때로는 동급 왕실의 여자를 넣어주랴 수고가 많을 것이오. 감당하겠소? 그럴 바에는 듬직한 왕족을 받아 사부로 삼아 공부도 하고, 모자란 유학(儒學)도 익히는 것이 낫지 않겠소? 늘 여진 오랑캐는 무식하다고 조롱을 받는데, 이 기회에 그런 모욕을 씻는 것이오.”
유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조선에 왕자가 그렇게 많소?”
“앞으로도 계속 생산될 것이오. 조선의 여자는 모두 왕의 여자들 아닙니까.”
새까만 거짓말이었지만 최명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넘겼다. 유해가 데려온 협상단과 잠시 뒤로 돌아앉아 상의하더니 말했다.
”좋은 말이오만, 우리는 왕자를 받아야겠소. 그것이 일국 대 일국의 화약 증명인 것이오.“
이것 가지고 질질 끌 수 없었다. 최명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주지요.”
이렇게 하여 화약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후금을 형님, 조선을 동생으로 하는 형제 국가로의 맹약이다.
2, 조선은 명나라의 연호 '천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3, 조선은 조선의 왕자를 인질로 보낸다.
4, 후금과 조선은 앞으로 서로의 영토를 침해하지 않는다.

마침내 3월 3일 화약 성사 의식을 행하였다. 그리고 협약에 따라 조선은 종실인 원창군을 왕자로 속여 인질로 보냈다. 속은 후금군은 철수하였다. 
후금군이 물러간 뒤 조정에서는 회담 뒷담화로 몹시 시끄러웠다.
“이런 수모가 어디 있소? 패전의 뒤끝이 이렇게 참담하다니, 정말 분통이 터져 죽겠소이다. 왕족을 인질로 보내는 이 수모를 무엇으로 감당하겠소이까.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자가 누구요? 장만 팔도도체찰사 아니오?”
“그렇소.”
이구동성으로 규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흡사 분풀이 경진대회 같았다. 
“우리가 어찌 저런 한낱 짐승의 피를 빨아먹는 오랑캐 야만족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국격을 떨어뜨린 장만을 당장 탄핵하기를 소청(所請) 드립니다.”
“맞소. 그 자는 후금군을 끝까지 막지 못했소. 아니 간자 노릇을 했소. 그렇게 심약한 자가 장군이었다니 나라의 수치올시다.”
결국 장만은 연안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부여로 이배(移配)되었다. 그게 너무 가혹했던지 어느날 귀향 조치가 내려졌다. 그는 환멸을 느낀 나머지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고령의 나이(63세)와 오랜 변방 생활이 가져온 피로감도 컸다.  
행장(行狀)에는 “공이 변방에서 수고를 계속한 지 십수 년 만에 병을 끌어안게 되었다. 이괄의 변란 때는 병든 몸을 수레에 싣고서 난을 평정하다가 왼쪽 눈이 실명되었다. 평생동안 여러 차례 환란을 겪다보니,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이 깊었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항상 문을 닫고서 벗들이 나오라고 하여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인간 세상의 오염된 벼슬에 더이상 마음이 없었다”는 뜻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장만이 1629년 직접 쓴 춘첩(春帖)에 그 자신의 마음의 일단을 담고 있다. 

내 나이 예순 넷
포의(布衣)로서 최고로 영달하였네. 
전원으로 물러가는 것이 첫째 소원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다음 소원이라네. 
이 밖에 구하는 것 없나니
신명이 내 마음 비춰 주리라. 
<낙서집 권5, 부록, 장만행장>

1629년 11월 15일, 장만은 반송리(오늘의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일원)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가 떠나자 나라는 더욱 어지럽게 시끄럽고, 불타는 마을처럼 늘 위태로웠다. 맥락없는 사대부의 분탕질로 나라는 병자호란의 불구덩이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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