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근과 내전으로 고통받는  예멘어린이 모습=YTN뉴스 영상캡쳐
기근과 내전으로 고통받는 예멘어린이 모습=YTN뉴스 영상캡쳐

[오피니언타임스=구동진 칼럼니스트]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사진이 있다. 하나는 ‘어느 인민전선 병사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사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양실조에 걸린 앙상한 어린 소녀가 엎드린 뒤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지켜보고 있는 사진이다. 전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사진가들이 그렇게 많지만, 이런 사진들은 흔치 않다.

때문에 일생 일대에 한번 찍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작품으로, 단 한번의 시선만으로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 전자는 1936년 10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로버트 카파가 24살 때 찍었다고 알려져 있고, 후자는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케빈 카터가 아프리카 수단의 급식소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다. 

두 사진 모두 처음에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젊은 카파는 사진의 역사로 남았다. 종군기자로 참여하며 기록한 흑백의 참상들과 흐릿한 전쟁 사진은 나를 비롯한 많은 젊은 사람들의 가슴에 피가 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학시절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던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아직도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카터는 그 한장으로 전 지구인에게 아프리카 기아에 대한 비참한 실상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순식간에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휴가 차 방문한 수단에서 건진 이 사진은 카터에게 퓰리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상으로 다가 왔다. 

또 처음 불러 일으킨 반향만큼이나 큰 논란도 불러왔다. 카파의 사진은 연출 된 것이란다. 호사가의 논란일지 실제 상황이었을 지 단언하기 힘들지만, 스페인 고고학자가 과학적인 지형측량법까지 동원하여 촬영 장소가 당초 촬영되었다고 알려진 곳으로부터 무려 50키로미터나 떨어진 곳임을 밝혔다. 그 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진 적도 없었다.

그리고 카터는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제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어린 아이를 무서운 독수리가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라면 렌즈를 갖다 댈 것이 아니라 아이부터 살려야 했다는 지적이다. 카터 역시 사진 몇 장 찍고 나서는 독수리를 쫓아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험담을 퍼부었고, 결국 카터는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연출이라는 것과 비인간적이라는 비평을 떠나서 이렇게 사진 하나가 던져주는 메시지의 힘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경험칙상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사진은 2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특별한 메시지 보다는 기사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과 사진 그 자체가 엄청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을 상세히 알려주는 기능으로서의 기사가 병행되는 경우다.

예를 들면 중요한 정견을 발표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 앞에 마이크를 앞에 둔 정치인의 얼굴 사진 같은 경우가 전자에 해당하겠고, 카파나 카터의 사진과 함께 상황을 알려주는 보도가 후자가 될 수 있겠다. 그래서 때로는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흉내만 내는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비싼 헛수고일뿐
나도 대학시절 내내 카메라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교내 영자신문사에서 사진도 찍고 기사도 영문으로 직접 썼다. 좋은 장비를 가진 프로 사진기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형편 없는 장비로 건질만한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발로 뛰는 수 밖에 없었다. 시위대 맨 앞 열 보다 더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대치한 경찰들 코 앞까지 다가서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은 맨 앞에 서서 사진을 찍다가 시위대가 던진 돌에 정통으로 뒤통수를 맞았던 경험이다.

그렇게 강한 타격은 처음이었는데, 그때 울렸던 ‘찡’함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그 덕분에 사진에 대한 학문적인 이론은 부족 했어도 후배들을 지도하기도 했고, 시간강사가 진행하는 사진학과 첫 수업에서 젊잖게 쫓겨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광고가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많다. 아이폰13프로로 촬영한 영화라는 소개와 함께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이 출연한다. 인터넷을 살짝 들여다 보니 박 감독만의 도전이 아니라 애플의 ‘샷 온 아이폰 (Shot on iPhone)’ 캠페인의 일환으로 미셸 공드리, 데이미언 셔젤, 첸커신, 지아장커 등의 감독이 참여했다. 영화는 21분인데, 박 감독 동생인 박찬경 감독이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박 감독은 지난 2011년에도 아이폰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의 스마트폰 보다는 다소 쳐지는 성능의 아이폰4로 촬영했기에 그의 도전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기는 했지만, 대형화면으로 상영하기에는 화질이 부족했다. 그때 영화 제목이 ‘파란만장’ 이었다. 대중적 상영이 힘들었기에 영화를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나 영화제 관계자 내지는 참석자 정도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의 도전은 상당히 놀라울 만한 것 이었음에는 충분하다. 

어쩌다 보니 박 감독의 도전은 내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내가 있던 회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재무 구조조정에 나선 지 몇 년이 지나자 조직에 피로도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경연진들도 바뀌고 새 마음 새 뜻으로 힘을 모아 보자고 목소리를 높여도 임원회의 자리에서나 먹혔지, 회의적인 반응뿐이었다.

또 거듭되는 대규모 유상증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한 직원들은 우하향만 하는 주가 곡선에 인내심도 바닥 나고 있었다. 직원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사주를 땡처리 하고 생긴 갭을 퇴직금이라도 중간정산해서 손실처리 하는 것이 유일했다.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회사는 행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외부 전문업체에 의뢰해 대형 공간을 빌려 회사의 전 임직원들이 참석케 하여 ‘우리만의 연극’을 관람하고 직접 만든 동영상도 함께 보며 마음을 잡아 보자는 의도였다. 처음부터 그런 기획은 아니었다. 커뮤니케이션팀에게 문의해 온 것은 ‘스마트폰으로 의미 있는 동영상을 자체 제작해 보겠냐?’ 였다. 다른 행사 안은 그때까지 아무 것도 없었다. 심사숙고해 내린 내 생각은 ‘No’였다. 비용이 부담이었기에 자체 제작한 동영상을 관람토록 하자는 제의였지만, 나는 그런 이유 때문에 거절했다. 당시 스마트폰으로는 구린 화질일 수 밖에 없어서, 내용이 어떻든 간에 제대로 의미가 전달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차라리 최소한의 비용으로 잘 아는 전문가들을 동원하면 제대로 제작 가능하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행사 기획이 산으로 가 버렸다. 행사나 영상에는 감이 별로 없었던 임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댄 결과, 차라리 비용을 들여서 외부 전문 업체에 의뢰를 해 버린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선 전혀 고민도 없던 사람들이 뭔가를 하기로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그리하여 외부 업체가 주도가 되어 당시 회사 상황을 희망적으로 그린 대본을 바탕으로 전문 연극배우들로 하여금 상황극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극이 끝나면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영상물을 상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첫 취지는 비용을 들이지 않게 자체 제작하여 메시지를 주자는 것이었는데, 바뀐 기획은 정반대였다. 대규모 비용을 들여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상황극과 대형 극장을 빌리고, 거기에 구린 화질의 스마트폰으로 만든 영상으로 방점을 찍자는 기각 막힌 기획이 통과 되고야 말았다. 

기업은 프로가 모인 곳이고 프로로 보여져야 한다
덕분에 어느 평일 오후 임직원들은 일찍 일을 마쳤고, 여러 대의 전세버스에 나눠 타고 무려 인천(아마도 수백명의 임직원이 모두 참석해야 하는 대형 극장의 대관이 쉽지 않았으리라)까지 갔다. 상황극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던 ‘캐리비안의 해적’의 OST를 테마음악으로 험한 바다를 항해해 나간다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는 봐 줄 수 있는 내용이긴 했다.

그런데 그날 행사의 휘날레를 장식하는 동영상이 나온 순간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으로 제대로 자리에 앉아서 쳐다 볼 수 조차 없었다. 좋은 내용이라고는 하나 조악한 화질의 동영상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결코 빛나는 희망이 아니었다. 

무성영화도 아니고 기록영화도 아닌데 가로로 찍은 화면에서 갑자기 세로로 찍힌 화면이 이어지기도 했다. 어릴 적 안테나 방향이 맞지 않아서 비가 오는 듯한 화면이 나오는 가 하면, 해외 사업장에서 찍어 보낸 영상들 중 일부는 말 소리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더 안쓰러웠던 것은 영상에 등장하는 직원들은, 적어도 그것이 왜 찍히는 가를 알고 있었기에, 평소와 달리 결의에 찬 모습으로 잔뜩 힘을 준 목소리로 일관했는데, 그 모습이 더 슬프게 했다. 막판에는 감동이 아니라 침통함과 비참함에 내 눈에선 눈물이 고이기도 이미 들어갈 대로 비용은 들어가 버렸는데 일부러 조악한 화질을 구현해 내는 어이없는 상황이 나를 더 기막히게 했다. 

그때 경영진에서 내세운 이유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박찬욱 감독이 아이폰4로 영화까지 찍은 마당에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냐’였다. 화질이 구리면 구린 대로 우리 스스로가 뭔가를 만들어서 공유하는 의미를 찾자고 시작한 것인데, 배가 산으로 가 버렸다. 돈은 돈대로 왕창 썼고, 영상은 구렸다. 아무리 ‘박찬욱 감독과 촬영 전문가들이 붙어서 노출값도 계산하고 조명도 써 가면서 찍었지만 결국 화질은 구렸다’고 얘기를 해도 ‘최소한 돈 들이지 않고 찍을 수 있잖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는데, 상황은 정반대가 되어버렸다. 

웬만한 회사에서는 그런 영상물 하나를 제작하면 ‘원 소스 멀티 유즈’라고 참 다양하게 활용한다. 일단 회사 소개하는 데에 그만한 힘을 가진 자료가 없다. 홈페이지나 그 밖의 기업 SNS에도 활용이 된다. 그리고 신입이나 경력 같은 직원 교육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재가 된다. 그런데 일부러 돈 들여서 그런 비 오는 화면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었다.

잡음이 섞여서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노이즈가 잔뜩 끼어서 비 오는 듯한 화면을 접하게 되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아 이 회사의 앞날이 이렇구나’라고. 회사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진 그 곳에서 그런 거창한 행사를 치르고 난 다음날 출근한 직원들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어두워 있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비싼 헛수고에 불과했다. 

사진의 가장 강력한 힘은 ‘그 현장에서 기록한 것’이다. 거기서 메시지의 힘이 나온다. 전쟁터에는 가보지도 않으면서도 스토리는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는 종군기자의 렌즈를 통해서만 구현된다. ‘카파이즘’이라는 신드롬을 낳으며 전쟁 사진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모습은 사실 초점이 나가 있는 사진이다. 그래서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 더 유명하다. 이유는 그가 그 현장에 직접 있었다는 것 때문이다. 그 사진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무리 재정 형편이 어려운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프로페셔널들이 모인 곳이다. 때문에 비록 제품이나 상품이 아니더라도 이런 프로들이 모인 곳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그게 무엇이 되었던 프로의 것으로 비춰져야 한다. 글이 되었건 사진이 되었건 프로의 메시지로 다가서야 한다. 최상급 한우 스테이크를 깨진 뚝배기에 담아 내 간다면 그건 훌륭한 요리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 안의 내용과 함께 화면과 화질 하나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작은 흠집 하나가 작품의 가치를 어마어마하게 훼손하듯이, 사진 한 컷에서도 보는 사람들은 회사의 실력을 가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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