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행보와 관련하여 우리 정치사와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기대나 당위성이 아닌 실현 가능한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그의 정치적 역할과 차기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논의되고, 중지가 모아지기를 기대합니다.
   .....................

대선이후 그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나온다. 대선 전에도 4월 재보선 출마설과 신당창당설, 지방선거 참여설이 흘러나왔지만, 민주당의 대선 패배 후유증과 맞물려 그를 중심으로 하는 정계개편설까지 거론된다.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여 그를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좌절과 아픔을 겪었기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과 정계개편의 당위성, 민주당에 대한 실망, 그에 대한 기대에서 나오는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사를 돌이켜보고, 현실정치 측면에서 보면 어느 것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보선 출마, 지방선거, 그런 작은 것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당분간은 그가 움직인다면 소탐대실이다. 그를 중심으로 하는 정계개편, 당분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고 그런 정치인으로 사라져 갈 수도 있다. 솔직히 나는 그가 2년쯤 외국에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인 그가 차기 대선을 위해서 앞만 보고 자기 갈 길을 당당히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그렇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계에 복귀해야 할 것인가. 맹수가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위치에서,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잡듯이, 그렇게 복귀해야 한다. 밀어붙일 수 있을 때 일거에 밀어붙여야 한다.
 
4월 재보선 출마, 한 마디로 절대 나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당은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권력의 속성상 그를 견제하기 마련이고, 끊임없이 흠집내려할 것이다. 당선이야 되겠지만, 거대 양당 사이에서 단기필마, 초선 국회의원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반수가 넘는 여대국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도 할 수 없다. 오히려 그에게 현실정치의 벽과 정치에 대한 회의만 안겨줄 것이고, 견제 속에서 상처만 받을 것이다.

상대는 공작정치에 능했던 박정희의 딸이자 언론을 장악한 집권여당이고, 술수에 능한 친노다. 그리고 집권 초기, 대부분의 언론은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정권과 밀월관계에 들어갈 것이다. 언론의 초점은 새로운 정권이지, 결코 그가 아니다. 그가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현실정치 경험이야 하겠지만, 대권가도에는 결코 득은 별로 없고 실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 지금 시점에서 신당 창당은 꽃망울이 열리기도 전에 과일 수확을 바라는 꼴이다. 조기에 신당 창당을 해서 얻는 효과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창당을 여러 번 했던 DJ의 예를 보자. 94년 말 영국에서 귀국했으나, 95년 9월에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또한 가장 권력이 막강할 때인 집권 초기가 아니라 2000년 1월에야 새천년민주당 창당을 했다. 모두 총선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다. 그 전에 신당 창당을 해봐야 실익이 없고, 추동력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총선은 앞으로도 3년 넘게 남았다. 창당을 하려면 세력이 되어줄 현역 국회의원들이 다수 참여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 달려올 현역 국회의원은 송호창 외는 거의 없을 것이다. 1인 중심이었던 이종찬의 새한국당, 이인제의 국민신당,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정당이 없는 그와 유사한 위치에 있었던 GK의 경우를 보자. GK가 정계은퇴를 결심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깊은 회의와 실망이었다. 2006년 12월 정치인들은 조변석개했고, 심지어 8년 후까지 보장을 요구한 자도 있었다. GK를 팔아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인사는 은퇴 발표 다음 날 대선후보로 다른 사람을 언급했을 정도다.

그러한 행태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인들이었고, 총선이 1년 넘게 남았던 시점이라 철저히 주판알 튀긴 것이었다. 지금도 그들 중 상당수가 버젓이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 그들과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직은 그들을 믿어서도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다. 그들을 믿고 무엇을 도모한다는 것은 실패만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난파선의 쥐처럼 몰려올 것이다. 2007년에도 그랬으니까.

아울러 당분간은 신당 창당의 명분도 약하고, 추동력도 약하다. 기존 정당을 비판하던 그가 기존 정당의 사람들을 빼온다? 지금 시점으론 자가당착이다. 명분이야 어찌 만들면 되겠지만, 그와 국민이 바라던 새로운 정치는 결코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가 지금 신당 창당을 할만한 Manpower를 가지고 있는가? 진심캠프와 자발적 외곽조직만으론 결코 쉽지 않다. 막강한 Manpower를 가진 GK가 창당하지 않았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리고 창당 및 운영자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지금은 판을 흔들어버릴 동력이 별로 크지 않다. 민주당의 대선 후유증, 머지않아 가라앉을 것이다. 계파간 갈등이야 계속 되겠지만, 분당, 당분간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울타리, 그것이 그들의 밥그릇이고, 정치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내부 갈등이 분당으로 이어지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고, 정통야당의 적통 ‧ 당사 ‧ 정당보조금 일부를 포기해야하며, 지지층 분할 ‧ 창당자금의 부담이 있다. 또 열린우리당 실패의 학습효과가 있다. 밥 잘 먹고 있는 정치인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하여 허허벌판으로 나설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신당을 창당해야 하는 시점은 20대 총선을 1년 앞둔 2015년이 최적이라 본다. 2년 후에 돌아와 총선을 대비하여 신당 창당을 해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때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것이다, 새 정권의 실정도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고, 국민의 불만도 쌓일 것이다. 태풍의 눈으로서 일거에 정국을 주도할 수도 있다.

지방선거는 참여해야 할까? 세 확대를 위해서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과 성격이 다르다. DJ가 지방선거를 건너뛰고 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오랫동안 지역에 고착화된 거대 정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디에, 어떻게 거점을 잡을 것인가? 그동안 진보정당들의 지방선거 결과를 봐서도 알 수 있지 않는가? 따라서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의 영입도 쉽지 않을 것이다.

GK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현역 단체장 및 출마희망자의 간절한 지원 요청을 거절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려 있기도 했지만, 지방선거에서 얻는 득보다 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선거연대를 통해 특정 지역 몇 자리를 양보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대권가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자칫 그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도박은 애초에 배우지도, 하지도 않는 법이다.

재보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에 뜻을 둔 캠프사람이건 외부 사람이건 간에 끊임없이 그를 유혹할 것이다. 그런 것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그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자꾸 부추긴다면 오히려 그들 개인의 정치적 야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외국으로 피해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는 정상인은 없다. 캠프 인사들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다. 외국에 있으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평가할 기회도 될 것이다. DJ가 영국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것은 재기의 발판이 된 아태재단 구상과 구성원 명단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차기를 위한 절차탁마(切磋琢磨)와 각고면려(刻苦勉勵)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의사‧기업인‧교수 등 다양한 경륜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었겠으나, 총칼 없는 전쟁터인 정치판에서는 정치 초년생으로서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어떤 비바람에도 꺾이거나 뽑히지 않는 잡초 같은 권력의지를 다져야한다.

부차(夫差)처럼 섶 위에서 자고, 구천(勾踐)처럼 쓸개를 맛보는 정도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보다 훨씬 풍부한 국정과 정치경험, 경륜을 가진 GK가 실패했던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향후 2년이 그가 온실에서 나와 들판으로 옮겨가는 절호의 시기라 생각한다.

그의 정치경험은 일천하고, 국정 경험은 전무하다. 사람들이 그를 불안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취약한 것은 외교 분야일 것이다. 그 시기에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유력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정치개혁의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외국의 정치제도를 연구하고 경험했으면 한다. 장차 한반도에 미칠 정치경제적 환경을 몸소 체득했으면 한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훨씬 국정운영에 필요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외국 정치권에 우군을 만드는 것이다. 의학지식을 활용하여 아프리카 오지에서의 의료봉사도 필요할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빈곤한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시선으로 복지정책의 방향을 잡을 수도 있다. 국내에서 민생탐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국내에서는 온갖 유혹과 견제만 있을 뿐이다. 민생 탐방은 그가 돌아와서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2년 정도의 시간은 결코 긴 것이 아니다. DJ는 71년 대선이후 26년이 걸렸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심했던 남아공에서 넬슨 만델라는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춘추전국시대 2대 패자(覇者) 진(晉) 문공(文公)은 개자추의 다리 살까지 씹어가며 19년이라는 고난의 세월을 적(狄)과 초(楚)나라에서 망명생활로 보냈다. 만델라가 얻은 것은 국민의 신망이었고, 문공이 얻은 것은 풍부한 이력과 정치 경험을 쌓아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깊이 깨우친 것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는 노출빈도를 줄여 국민들의 심리적 피로를 줄이고, 귀국이후 Quasi-Effect(유사효과)를 극대화하는 측면도 있다. 가수가 새 음반 나올 때까지 활동을 중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DJ가 85년 2.8선거 직전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94년 말 영국에서 귀국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특히 92년 대선 패배이후 국내에 머물렀다면 정계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DJ는 투옥 ‧ 가택연금 ‧ 외국 체류로, 만델라는 영어의 몸으로, 문공은 망명으로 노출빈도를 줄였다는 점도 생각해볼 일이다.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여 그를 지지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여. 2년만 그를 가만히 놔뒀으면 한다. 그것이 그를 한 단계 진일보한 정치인으로 키워주는 길이다. 최소한 2년은 그에게 겨울이고, 얼음장이다. 안도현 시인이 노래했듯이 얼음장이 녹을 때까지 참기로 하자.


ⓒ 오피니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오피니언타임스는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