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달려간 공중화장실이었다. 좌변기에 착석을 마치고 눈길을 들자마자 내 잡념을 빼앗는 문장 하나가 동공에 박히며 과제물처럼 코앞에 놓였다. ‘Dreamisnowhere’ 이라 적힌 영문이다. 이걸 나름대로 잘 맞춰 해석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불가에서는 화장실을 가리켜 근심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곳, 그래서 해우소(解憂所)라 부르지 않던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무료함도 달랠 겸 마침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낱말의 구조와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문장이었다. 아하... 이건 고급 영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너무 쉽게 여겨 가소롭게 판단할 수준 또한 아닐 성싶었다. 언뜻 쉽게 감지되는 것은 모두 4개의 단어로 이뤄진 단문의 형식이라는 점이다. 약간의 궁금증을 매단 것이 내 호기심을 잡아끌고 있었다. 잠시 머리를 식힐만한 재치 넘치는 교양물일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순간적으로 흥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먼저 단어를 맞추고 정확한 띄어쓰기로 배열해 보았다. ‘Dream is no where’ ‘꿈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아하.. 이건 분명 역설도 아닐 텐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절망적 고립을 한탄하는 자포자기의 글이 아닐 텐가! 하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절망을 찬양하였을 리는 만무할 터이다. 이런 내용이라면 이런 공공장소에 게시되어 영혼의 양식으로 읽힐만한 하등의 가치도 없었을 테다.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이 글을 게시한 사람의 공의가 따로 숨겨져 있음을 눈치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희망은 언제나 절망 그 뒷자리에 숨겨진 법이다. 사마천에게 궁형(宮刑)의 고난이 없었다면 사기(史記)도 존재치 않았을 터, 절망의 깊은 그늘 속엔 언제나 희망의 종균들이 숨죽이며 자란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Dream is now here’ ‘꿈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라는 또 다른 단문 하나를 발견하여 그 자리에 희망을 대입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강한 긍정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희망의 문장이 숨죽여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Now는 오늘에 속한 시점이지 않은가! 현실이란 정점에서 희망을 애타게 외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하마터면 그걸 놓치고 지나칠 뻔했던 날이다.

우연스럽게도, 간단한 띄어쓰기 낱말 하나를 경계로 그 문장의 의미가 흑과 백으로 갈리고 있었다. 우연스럽게도, 간단한 띄어쓰기 낱말 하나를 경계로 꿈(Dream)이 존재 혹은 부존재로 맞서가며 극적인 상반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마치 DNA 염색체의 배열순서 그 하나를 놓고 벌이는 돌연변이의 변수, 게놈(Genom)의 역할처럼 말이다. /박얼서, 시인


ⓒ 오피니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오피니언타임스는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